객체지향을 한 단어로 설명한다면 그것은 클래스가 아니라 메시지이다

의도는 “메시징”이다.
훌륭하고 성장 가능한 시스템을 만들기 위한 핵심은 모듈 내부의 속성과 행동이 어떤가보다
모듈이 어떻게 커뮤니케이션하는가에 달려있다.

  • Alan Curtis Kay

자율적인 책임

객체지향 공동체를 구성하는 기본 단위는 자율적인 객체다.
자율적인 객체란 스스로 정한 원칙에 따라 판단하고 스스로의 의지를 기반으로 행동하는 객체다. 객체가 어떤 행동을 하는 유일한 이유는 다른 객체로부터 요청을 수신했기 때문이다. 요청을 처리하기 위해 객체가 수행하는 행동을 책임이라고 한다.

적절한 책임이 자율적인 객체를 낳고, 자율적인 객체들이 모여 유연하고 단순한 협력을 낳는다. 따라서 협력에 참여하는 객체가 얼마나 자율적인지가 전체 어플리케이션의 품질을 결정한다. 객체가 책임을 자율적으로 수행하기 위해서는 객체에게 할당되는 책임이 자율적이어야 한다. 책임이 자율적이지 않다면 객체가 아무리 발버둥친다고 하더라도 자율적으로 책임을 수행하기 어렵다.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동화에 등장하는 왕의 재판을 통해 객체지향에서의 책임과 협력하는 과정을 살펴보자.

협력1. 모자 장수는 증언할 책임을 자율적인 방식으로 수행할 수 있음

협력1에서 모자 장수는 왕에게 증언할 책임은 있지만 증언을 위한 구체적인 방법이나 절차에 대해서는 최대한의 자유를 누린다.
증언을 위해 기억력에 의존할지, 메모를 참고할지, 혹은 서면 제출할지 등 증언을 수행하기 위한 방법에는 제약이 없다.

중요한 것은 왕의 입장에서 모자 장수가 어떤 방법으로 증하는지는 중요하지 않다는 것이다.

왕은 단지 모자 장수가 증언하기를 바랄 뿐이다. 증언이라는 책임만 완수할 수 있다면 나머지 구체적인 방법이나 절차는 모자 장수가 자유롭게 선택하도록 허용한다. 따라서 모자 장수는 최종적으로 왕이 만족할 만한 수준으로 증언할 수만 있다면 그 밖의 세부 사항에 대해서는 무한대에 가까운 자율권을 누릴 수 있다.

협력2. 좀 더 상세한 수준의 책임을 수행하는 모자 장수

협력2는 왕이 모자 장수에게 증언을 좀 더 상세한 수준으로 요청한다.
모자 장수는 협력1에서와 마찬가지로 이 요청들을 차례대로 처리해야하는 책임을 갖고 있다. 하지만 문제는 모자 장수가 증언하기 위해 선택할 수 있는 자유의 범위를 지나치게 제한한다는 것이다. 메모한 내용을 손에 쥐고 있어도 보기 어렵고, 반드시 재판에 참석하여 말로 증언을 해야하기 때문에 다른 수단을 이용할 수도 없다.

이와 같은 상세한 수준의 책임은 증언이라는 협력의 최종 목표는 만족시킬지 몰라도 모자 장수가 누려야 하는 선택의 자유를 크게 훼손하고 만다.
즉, 협력2를 통해 모자 장수는 책임을 수행하기 위해 자신의 의지나 판단력이 아닌 왕의 명령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
결과적으로 두 번째 모자 장수는 자율적으로 책임을 수행할 수 없다.

협력3. 협력의 의도를 흐릿하게 만드는 추상적인 책임
협력2와 같이 책임이 너무 상세해도 문제지만 협력의 의도를 명확하게 표현하지 못할 정도로 추상적인 것 역시 문제다.
협력3에서 설명하라라는 책임은 무엇에 대해서 설명해야하는지 알 수 없다. 추상적이고 포괄적인 책임은 협력을 좀 더 다양한 환경에서 재사용할 수 있도록 유연성이라는 축복을 내려준다. 그러나 책임은 협력에 참여하는 의도를 명확하게 설명할 수 있는 수준 안에서 추상적이어야 한다.

증언하라라는 책임이 휼륭한 책임인 이유는,
모자 장수의 자율성을 보장할 수 있을 정도로 충분히 추상적인 동시에 협력의 의도를 뚜렷하게 표현할 수 있을 정도로 충분히 구체적이기 때문이다.
어떤 책임이 자율적인지를 판단하는 기준은 문맥에 따라 다르다는 사실에 유의하라.
어떤 책임이 가장 적절한가는 설계 중인 협력이 무엇인가에 따라 달라진다.
이런 모호함이 객체지향 설계를 난해하면서도 매력적인 예술로 만드는 이유다.

성급한 일반화의 오류를 피하고 현재의 문맥에 가장 적합한 책임을 선택할 수 있는 날카로운 안목을 기르기 바란다.

자율적인 책임의 특징은 객체가 어떻게해야 하는가가 아니라 무엇을 해야하는가를 설명한다는 것이다. 증언한다라는 책임은 모자 장수가 협력을 위해 무엇을 해야 하는지는 결정하지만 어떻게 해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전혀 언급하지 않는다. 증언할 방법은 모자 장수가 자율적으로 선택할 수 있다. 책임이라는 말 속에는 어떤 행동을 수행한다는 의미가 포함돼 있다. 객체지향 공동체 안에 거주하는 객체는 다른 객체로부터 전송된 요청을 수신할 때만 어떤 행동을 시작한다.

즉, 사실 객체가 다른 객체에게 접근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요청을 전송하는 것뿐이다.
그리고 이 요청을 우리는 메시지라고 부른다. 메시지는 객체로 하여금 자신의 책임, 즉 행동을 수행하게 만드는 유일한 방법이다.

메시지와 메서드

하나의 객체는 메시지를 전송함으로써 다른 객체에 접근한다. 객체의 행동을 유발하는 행위를 가리켜 메시지-전송이라고 한다. 메시지-전송 메커니즘은 객체가 다른 객체에 접근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다.

앞서 예로 든 증언하라라는 부분은 왕이 모자 장수에게 전송하는 메시지이고, 이 부분을 메시지 이름이라고 한다. 메시지를 전송할 때 추가적인 정보가 필요한 경우 메시지의 인자를 통해 추가 정보를 제공할 수 있다. 메시지는 메시지 이름과 인자의 두 부분으로 구성되므로 결국 메시지 전송은 수신자, 메시지 이름, 인자이 조합이 된다.

모자장수.증언하라(어제, 왕국);

모자 장수가 수신할 수 있는 메시지가 모자 장수가 수행해야 할 책임의 모양을 결정한다.
모자 장수가 메시지를 변경하지만 않는다면 책임을 수행하는 방법을 변경하더라도 왕은 그 사실을 알 수 없다. 이것은 객체의 외부와 내부가 메시지를 기준으로 분리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객체가 제공하는 메시지는 외부의 다른 객체가 볼 수 있는 공개된 영역에 속한다. 메시지를 처리하기 위해 책임을 수행하는 방법은 외부의 다른 객체가 볼 수 없는 객체 자신의 사적인 영역에 속한다. 객체가 유일하게 이해할 수 있는 의사소통 수단은 메시지뿐이며 객체는 메시지를 처리하기 위한 방법을 자율적으로 선택할 수 있다.

모자 장수가 메시지를 처리하기 위해 내부적으로 선택하는 방법을 메서드라고 한다. 왕이 전송한 증언하라라는 메시지를 처리하기 위해 모자 장수가 내부적으로 선택하는 증언 방법이 바로 메서드다. 따라서 어떤 객체에게 메시지를 전송하면 결과적으로 메시지에 대응되는 특정 메서드가 실행된다.

메시지가 ‘어떻게’ 수행될 것인지는 명시하지 않는다.
메시지는 단지 오퍼레이션을 통해 ‘무엇’이 실행되기를 바라는지만 명시하며,
어떤 메서드를 선택할 것인지는 전적으로 수신자의 결정에 좌우된다.

다형성

이런 메시지와 메서드의 차이와 관계를 이해하고 나면 객체지향의 핵심 개념인 다형성을 쉽게 이해할 수 있다.
다형성이란 서로 다른 유형의 객체가 동일한 메시지에 대해 서로 다르게 반응하는 것을 의미한다.
서로 다른 타입에 속하는 객체들이 동일한 메시지를 수신할 경우 서로 다른 메서드를 이용해 메시를 이용해 메시지를 처리할 수 있는 메커니즘을 가리킨다.

다형성 : 왕으로부터 동일한 메시지를 수신하고 각자 필요한 방법에 맞게 처리한다.

앨리스의 이야기에서 모자 장수, 요리사, 앨리시는 모두 왕이 전송한 증언하라라는 메시지를 이해할 수 있다. 각 수신자는 왕이 전송한 메시지를 처리하기 위해 자신만의 방법을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다. 어떤 방법을 사용하건 왕의 입장에서는 결과가 동일하다. 이들 모두 증언하고 있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다형성이다.

다형성은 역할, 책임, 협력과 깊은 관련이 있다.
서로 다른 객체들이 다형성을 만족시킨다는 것은 객체들이 동일한 책임을 공유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메시지 수신자들이 동일한 오퍼레이션을 서로 다른 방식으로 처리하더라도 메시지 송신자의 관점에서 이 객체들은 동일한 책임을 수행하는 것이다. 즉, 송신자의 관점에서 다형적인 수신자들을 구별할 필요가 없으며 자신의 요청을 수행할 책임을 지닌다는 점에서 모두 동일하다.

다형성은 객체들의 대체 가능성을 이용해 설계를 유연하고 재사용 가능하게 만든다. 다형성을 사용하면 송신자가 수신자의 종류를 모르더라도 메시지를 전송할 수 있다. 즉, 다형성은 수신자의 종류를 캡슐화한다.

객체지향 패러다임이 강력한 이유는 다형성을 이용해 협력을 유연하게 만들수 있기 때문이다.

메시지를 따라라

객체지향 애플리케이션의 중심 사상은 연쇄적으로 메시지를 전송하고 수신하는 객체들 사이의 협력 관계를 기반으로 사용자에게 유용한 기능을 제공하는 것이다. 클래스 기반의 객체지향 언어를 사용하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객체지향 애플리케이션을 클래스의 집합으로 생각한다. 프로그래머 입장에서는 클래스는 실제로 볼 수 있고 수정할 수 있는 구체적인 존재다. 대부분의 입문자들은 클래스 간의 상속 관계가 객체지향 설계를 가치 있게 만드는 핵심적인 매커니즘이라고 배운다.

하지만 객체지향의 강력함은 클래스가 아니라 객체들이 주고받는 메시지로부터 나온다.
객체지향의 애플리케이션은 클래스를 이용해 만들어지지만 메시지를 통해 정의된다.

실제로 애플리케이션을 살아있게 만드는 것은 클래스가 아니라 객체다. 그리고 이런 객체들의 윤곽을 결정하는 것이 바로 객체들이 주고받는 메시지다. 클래스를 정의하는 것이 먼저가 아니라 객체들의 속성과 행위를 식별하는 것이 먼저다. 클래스는 객체의 속성과 행위를 담는 틀일 뿐이다.
객체 자체에 초점을 맞출 경우 가장 흔히 범하게 되는 실수는 협력이라는 문맥을 배제한 채 객체 내부의 데이터 구조를 먼저 생각한 후 데이터 조작에 필요한 오퍼레이션을 나중에 고려하는 것이다.

훌륭한 객체지향 설계는 어떤 객체가 어떤 메시지를 전송할 수 있는가와
어떤 객체가 어떤 메시지를 이해할 수 있는가를 중심으로 객체 사이의 협력 관계를 구성하는 것이다.
객체지향 설계의 중심에는 메시지가 위치한다. 객체가 메시지를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메시지가 객체를 선택하게 해야 한다.
객체지향 시스템은 협력하는 객체들의 연결망이다.

객체 인터페이스, 구현의 분리

일반적인 인터페이스의 특징은 다음과 같다.

  • 인터페이스의 사용법을 익히기만 하면 내부 구조나 동작 방식을 몰라도 쉽게 대상을 조작하거나 의사를 전달할 수 있다.
  • 인터페이스 자체는 변경하지 않고 단순히 내부 구성이나 작동 방식만을 변경하는 것은 인터페이스 사용자에게 어떤 영향도 미치지 않는다.
  • 대상이 변경되더라도 동일한 인터페이스를 제공하기만 하면 아무런 문제 없이 상호작용 할 수 있다.

객체가 다른 객체와 상호작용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메시지 전송이다.
따라서 객체의 인터페이스는 객체가 수신할 수 있는 메시지의 목록으로 구성되며 객체가 어떤 메시지를 수신할 수 있는지가 제공하는 인터페이스의 모양을 빚는다. 이때는 3가지의 원칙이 필요하다.

  • 좀 더 추상적인 인터페이스를 통해 수신자의 자율성을 보장
  • 외부에서 사용할 필요가 없는 인터페이스는 최대한 노출하지 말 것
  • 인터페이스와 구현 간에 차이가 있음

객체가 가져야 할 상태와 메서드 구현은 객체 내부에 속한다. 이 부분을 수정하더라도 객체 외부에 영향을 미쳐서는 안된다. 객체 외부에 영향을 미치는 변경은 객체의 공용 인터페이스를 수정할 때 분이다. 이렇게 인터페이스와 구현의 분리 원칙은 변경을 관리하기 위한 것이다. 느슨한 인터페이스에 대해서만 결합되도록 만드는 것이다.

이렇게 인터페이스를 제외한 구현부를 외부로 부터 감추는 것을 캡슐화라고 한다. 객체는 상태와 행위를 함께 캡슐화함으로써 충분히 협력적이고 만족스러울 정도로 자율적인 존재가 될 수 있다. 캡슐화를 정보의 은닉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객체가 자율적인 책임을 갖는 것이 중요한 이유

책임의 자율성이 협력의 품질을 결정한다.

객체의 책임이 자율적일수록 협력이 이해하기 쉬워지고 유연하게 변경할 수 있게 된다. 결과적으로 책임이 얼마나 자율적인지가 전체적인 협력의 설계 품질을 결정하게 된다.

  • 자율적인 책임은 협력을 단순하게 만든다.
  • 자율적인 책임은 모자 장수의 외부와 내부를 명확하게 분리한다.
  • 책임이 자율적일 경우 책임을 수행하는 내부적인 방법을 변경하더라도 외부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결합도가 낮아짐)
  • 자율적인 책임은 협력의 대상을 다양하게 선택할 수 있는 유연성을 제공한다.
  • 객체가 수행하는 책임들이 자율적일수록 객체의 역할을 이해하기 쉬워진다.

마무리

책임이 자율적일수록 적절하게 추상화되며,
응집도가 높아지고, 결합도가 낮아지며,
캡슐화가 증진되고, 인터페이스와 구현이 명확히 분리되며, 설계의 유연성재사용성이 향상된다.
이런 특성들이 모여 객체지향을 다른 패러다임보다 우월하게 만든다는 사실을 이해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객체지향의 강력함을 누리기 위한 출발점은 책임을 자율적으로 만드는 것이다.


출처 : 객체지향의 사실과 오해 5장 <책임과 메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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