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로그에 마지막 글을 쓴 지 1년이 되어간다. 현생이 바쁘단 핑계로 글쓰기는 어느 사이부터 잊고 살았다. 작년 말에는 바빠서 못쓰게 되었던 회고는 써보고 싶어, 2022년 12월에 노트북을 켰다. 그런데 쓸 말이 없었다. 바쁘게 일만 하고 살았다. 일하면서 있었던 에피소드나 공유하고 싶었던 내용들도 있었는데 한 번 밀린 글쓰기는 계속 밀려났었다.
나는 루틴 지속가능성에 대한 고민을 많이 한다. 루틴을 잘 지키다가 갑자기 눈코 뜰 새 없이 바빠지면 언제 그런 루틴을 했었는지 새까맣게 까먹는다. 한참이 지나서야 불현듯 그런 루틴이 생각난다. 루틴 어플도 써보았지만 아이폰에 설치된 수많은 어플들은 저마다 자기 앱을 봐달라는 푸시의 홍수를 이룬다. 이 중 루틴 어플의 알림도 그저 다른 알림들과 다를 바가 없었다.
메모에 대한 고민도 많이 한다. 만년필로 기록하는 아날로그를 좋아하지만, 유지보수성, 접근성, 동기화, 보존성 등을 생각해서 디지털 메모를 선택한다. 포켓용 수첩, 책상 앞에 붙여진 루틴 일지, 태블릿으로 하는 손 메모 등. 하지만 이 정보들이 한눈에 잘 보이지도 않고, 어느 폴더에 드래프로 쓰여있는 온갖 메모들을 보면 종종 방바닥에 다 쏟아 놓고 정리하고 싶다는 생각도 한다.
얼마 전 Big5 검사를 해보았는데 성실성이 64점으로 나왔다. 평균에 비슷한 수치인데 그럼 다들 나와 비슷한 고민을 하고 있지 않을까? 사람의 의지로 어떤 목표를 이루는 것은 굉장한 비용이 든다. 특히 그런 성향(Big5에서의 성실성)이 없다면 더 어려울 것이다. 나는 얼마 전까지 이런 것은 개인의 의지로 극복해야 된 지 않을까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나약한 인간의 의지로는 극복할 수 없다. 결국 환경이, 시스템이 해결해줘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이번에 새로운 시스템을 도입하려 한다.
제텔카스텐
제텔카스텐은 독일어이며 뜻은 메모 상자이다. 연구와 공부를 하는데 도움을 주는 지식 관리와 더불어 메모 작성 기법이다. 수많은 아이디어와 더불어 언제든지 수용되거나 혹은 버려지는 작은 정보로 된 정보가 적힌 메모들로 구성된다. 이 메모들은 서로 숫자로 연결되어 있으며, 새 메모가 제대로 들어갈 수 있게, 그리고 서로 참조할 수 있게 메타데이터를 담는다. 노트들은 태그를 담아 서로를 참조할 수 있다. 숫자, 메타데이터, 포맷 구성은 사용된 방법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위 이미지는 제텔카스텐으로 유명한 니클라스 루만 교수의 메모 상자이다.
제텔카스텐을 시도해 볼 수 있는 메모 어플들은 노션, 에버노트, 롬리서치, 옵시디언 등이 있는데 그중 나는 옵시디언을 택했다. 백링크는 대부분의 앱에서 지원하는 기능이라 거의 비슷하지만, 메모들 간의 연결고리를 보여주는 그래프 뷰는 옵시디언만 제공한다. 이 뷰에서 메모를 선택하면 해당 메모와 연관된 메모들을 보여주며, 바로 보기도 가능하다. 또한 옵시디언은 개인 플랜은 사용료가 무료이며, 클라우드 동기화1를 제공한다.
옵시디언의 메모들이 서로 연결되어 있는 모습은 마치 뇌의 뉴런 모습과 흡사 비슷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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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쓰는 것이 왜 어려울까 고민했을 때 내 기준에서 가장 큰 요인은 무엇을 쓸 것인가, 글감의 부재였다. 낱개로 흩어지는 메모를 유기적으로 연결하고 싶은 니즈는 온전히 사람의 손으로만 이루어져야 하는 것인가에 대한 고민들도 한 몫했다. 이전에 시도해 봤던 글감 갈무리는 단순하게 하나의 주제를 하나의 페이지에서 단어나 혹은 러프하게 써놓은 문장, 참고할 링크의 나열 정도였다. 이렇게라도 갈무리하면 그래도 도움은 되지만 빈약했고, 글감이라고 하기에는 민망한 수준이었다. 제텔카스텐을 활용하면 연결되는 메모들, 즉 유기적으로 연결된 정보들을 합쳐서 하나의 글을 만들기가 용이하다.
이제 나도 많은 메모를 제텔카스텐으로 기록하며, 나의 제2의 뇌를 만들 생각을 하니 벌써 설렌다. 앞으로 다시 글을 써보자.
- 아이폰의 경우 iCloud로 동기화 가능하다. ↩